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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스트릭트 9 > 는 외계인 영화가 아니다. 우리 남아공 사람들 이야기고 바로 내 가족 이야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사는 누르 에브라힘 씨는 < 시사IN > 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영화 < 디스트릭트 9 > 가 흥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한 답이었다. "힘없는 외계인 가족이 강제로 집에서 쫓겨난다는 영화 줄거리를 들으며, 35년 전 내가 겪은 일이 떠올랐다."

↑ 영화 에서 당국은 군대를 이끌고 외계인이 사는 집을 찾아가 이주를 종용한다.

↑ 실제 케이프타운 디스트릭트6 마을(왼쪽)은 불도저가 지나간 뒤 폐허가 됐다(오른쪽).

↑ 디스트릭트6 철거 피해자였던 누르 에브라힘 씨.

↑ 2004년 만델라 대통령(오른쪽)이 디스트릭트6 피해자에게 새 집 열쇠를 건네는 기념식이 열렸다.


남아공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 < 디스트릭트 9 > 는 한국에서 10월 셋째 주 주말 전국 관객동원 1위를 차지했다. 케이프타운에 나타난 외계인 난민을 소재로 한 이 SF영화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박수를 받는다. 식자는 영화에 담긴 사회 비판의식에 주목했다. 외계인을 친구 혹은 적으로 이분하는 할리우드 UFO 영화와 달리, 여기서 외계인은 힘없는 불법 이주민으로 묘사된다. 지구인은 외계인 거주 지역을 강제 철거하고 외딴 곳에 집단 수용소를 따로 만든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용산 철거민 참사가 생각났다'거나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탄압이 연상된다'는 식으로 각자 나름으로 공감했다.

영화 줄거리와 비교할 만한 사회적 차별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 디스트릭트 9 > 는 과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를 배경으로 한 게 분명하다. 이름부터 케이프타운에 실제 존재한 지명 '디스트릭트6'을 살짝 바꾼 것이다.

남아공판 뉴타운 피해자 6만명

디스트릭트6은 남아공 사람들에게 마치 한국의 1980년 광주만큼 의미 있는 역사적 장소다. 1970년대 백인 정부가 케이프타운 디스트릭트 6에 사는 유색인종 6만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잃고 25 km 떨어진 유색인종 집단 지구로 쫓겨났다.

디스트릭트6이라는 이름은 1867년 케이프타운 시가 도시 구획을 나누면서 제6행정지구라는 번호를 붙이면서 유래한 것이다. 약 1.5㎢ 되는 곳에 흑인뿐만 아니라 아랍인·말레이시아인·인도인 등 여러 민족이 옹기종기 뒤섞여서 지냈다. 누스 에브라힘씨 가족은 말레이 출신이다. 인근에 항구가 있어서 다양한 이주민이 모여 살았고 자유 노예부터 상인·노동자까지 출신 성분도 다양했다. 디스트릭트6에서 나고 자란 에브라힘 씨는 "모슬렘과 유태인이 이웃에 살았고 종교와 인종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했다"라고 회상했다.

영화 < 디스트릭트 9 > 에서 당국은 군대를 이끌고 외계인이 사는 집을 찾아가 이주를 종용한다. 하지만 인종차별 정책이 강화되자 비극이 찾아왔다. 강제 철거는 1913년부터 조금씩 진행되다 1950년 집단지역법(Group Areas Act)이 생기면서 1964~1969년에 유색인종 1만8천명이 강제로 쫓겨났다. 1966년 2월11일 정부는 디스트릭트6dmf 백인 지구로 선포했고 1968년부터 대대적인 재개발에 들어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판 '뉴타운 계획'이었다.

"철거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불도저가 우리 집을 밀어버리고 있을 때 나는 길 건너편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마치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많은 이웃이 화병으로 숨졌다. 나는 울기보다는 분노를 키웠다." 에브라힘 가족은 1975년에 '애슬로(Athlone)'이라고 불리는 유색인종 거주지로 쫓겨났다. 그곳은 풀한포기 없는 사막으로 둘러싸인 게토였다. 케이프 플랫이라고도 불린 이 게토는 여러 군데가 있었다. 각 게토는 흑인 지구·말레이시안 지구·인도인 지구 등 각 인종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인종끼리 결혼한 가정은 부부가 생이별해야 했다.

정부는 케이프타운을 국제 도시로 키우려면 재개발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디스트릭트6이 범죄와 매춘의 소굴이 되어서 '대청소'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도 들이댔다. 영화 < 디스트릭트 9 > 에서 나이지리아 갱이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에서 밀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1960년대에 이탈리아 갱이 디스트릭트6에서 암약하는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누스 에브라힘 씨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디스트릭트6에서는 유흥 문화가도 있었고 마피아도 살았다. 하지만 거기는 다양한 문화가 꽃을 피우는 곳이었다. 술집에서 사람들은 재즈를 즐겼고 음악가와 작가가 예술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불도저가 디스트릭트6을 밀어버린 뒤에 백인 정부는 신도시를 건설했다. 1973년 디스트릭트6은 조넨블로엠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백인 학생만을 위한 대학교도 세워졌다. 1985년 조넨블로엠 주민 3500명은 모두 중산층 백인이었고 상당수는 공무원이었다.

모래사막으로 강제 이주

디스트릭트6 사건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저지른 가장 악랄한 사례로 기억된다. 디스트릭트6 해체는 흑인 사회에 저항의식을 고취했다. 1970년대 스티브 비코를 중심으로 '흑인 각성운동'이 벌어졌다. 재개발 공사 과정에서 폭력?비폭력 저항이 이어졌다. 국제사회도 디스트릭트6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백인 정부에 제동을 걸었다. 애초 추진했던 신도시 뉴타운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결국 디스트릭트6 지구 상당 지역은 공터로 내버려졌다.

인종적인 이유든 경제적인 이유든 강제 철거 사태는 세계 어디서나 일어난다. 디스트릭트6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1990년 2월2일 마침내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합법화되고 2월11일 넬슨 만델라가 석방됐다. 남아공은 1991년 인종차별법을 폐지하고 새 시대를 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만델라는 1993년 9월 디스트릭트6 철거민을 만나서 디스트릭트6 신도시 계획을 중단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돌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쫓겨난 주민들이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1994년 4월 첫 번째 민주 선거를 실시한 결과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다. 만델라는 1995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세우고 '과거사 바로잡기'에 나섰다. 1913년 이후 강제로 땅을 뺏긴 사람이 구제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1996년 디스트릭트6 강제이주 피해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국제앰네스티가 주선한 이 청문회에서 많은 희생자와 가족이 증언을 했다.

2004년 만델라 대통령(오른쪽)이 디스트릭트6 피해자에게 새 집 열쇠를 건네는 기념식이 열렸다. 2004년 2월11일 만델라 대통령은 특별한 퍼포먼스를 열었다. 1968년 디스트릭트6에서 추방 당한 에브라힘 무랏과 단 은자벨라 씨가 만델라 대통령 앞에 섰다. 만델라는 그들에게 디스트릭트6에 복원된 집에 들어갈 열쇠를 건네줬다. 그들은 36년 만에 마침내 한을 풀었다.

물론 모든 철거민이 다 보상받고 귀환한 것은 아니다. 흑인 정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케이프타운에서 아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백인 지역 의회는 옛 철거민에게 집을 주는 일을 내켜하지 않는다. 지방 분권화가 된 남아공에서 중앙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에 대해 위성방송사 알자지라는 2008년 특집 방송에서 "과거 반민주주의 정치 때문에 쫓겨났던 사람들이 이제는 민주주의 정치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다"라고 평했다. 지금까지 25가구가 귀환했고, 4000명가량이 귀환 신청을 하고 차례를 기다린다. '디스트릭트6 토지 권리자 모임'의 한 회원은 유튜브 동영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억울하게 빼앗긴 집과 토지 되찾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오늘날까지도 남아공의 역사 바로잡기 작업은 계속된다. 올해 9월28일 남아공 지역개발 및 토지개혁부 장관은 디스트릭트6 피해자 가운데 300명이 추가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들이 1996년 청원을 낸 지 13년 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학생들은 역사 부교재로 디스트릭트6에 관한 책을 읽는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한 남아공 인디 밴드 이름은 디스트릭트6이다. 1994년 12월 세워진 '디스트릭트6 역사관'은 자녀 역사 교육 장소로 인기 있다. < 디스트릭트 9 > 를 만든 남아공 영화 감독이 이 역사를 몰랐을 리는 없다.

'디스트릭트6 역사관'에서 일하는 연구원 맨디 상거씨에게 영화 < 디스트릭트 9 > 에 대한 평을 물었다. 그녀는 "어두운 과거를 일깨운 점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불만스러운 부분 역시 있었다. 이 영화가 또 다른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을 만드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백인·흑인·나이지리아인 모습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게 그녀의 비판이다.

디스트릭트6 역사관에서 일하는 직원 가운데는 철거민 출신이 많다. 철거민 2세인 린다 포춘 씨는 "우리 가족은 2010년에 디스트릭트6로 돌아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누르 에브라힘 씨도 현재 < 디스트릭트6 역사관 > 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 그는 < 누르 이야기 : 디스트릭트6에서의 삶 > 이라는 책도 펴냈다. 에브라힘 씨는 "언제까지나 과거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과거를 용서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흑인 정부가 한을 풀어주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는 정의 실현이 필요한 법이다.

<시사IN> 신호철 기자 /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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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이던 은행들, 벌써 과거가 그리운가
정부 지원금 받을 땐 언제고, 다시 공익보다 수익추구에 골몰
2009-04-15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미국 금융가의 때 이른 기대와 은행들의 저항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규모 정부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은행들이 그 동안 정부의 압박과 국민의 비난 앞에 숨죽이며 지내오다가, 최근 억눌렸던(?)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에서 먼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최대 생명보험사 중 하나인 메트라이프가 자본금이 충분하다며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골드만삭스도 이미 받은 구제금융 가운데 100억 달러를 상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구제금융을 대가로 요구하는 각종 규제와 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수익을 추구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1/4분기 경영실적이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웰스파고와 골드만삭스가 예상보다 높은 흑자를 기록한 것이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웰스파고는 지난해 인수한 와코비아의 실적을 포함한 1분기 순이익이 3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혀 그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4월 13일자로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1분기 순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퍼센트 증가한 18억 1,0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림1] 주요 은행들의 주가 추이



그 결과 미국 은행들의 주가가 상승하고 2월에 몰아쳤던 상업은행발 제2의 금융위기가 소강상태를 넘어 회복조짐에 들어선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낳게 했다. 4월 16일 발표될 JP모건의 실적과, 특히 17일 발표될 씨티그룹의 실적이 나와봐야 좀 더 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미국 정부가 시행중인 자산규모 1,000억 달러 이상의 19개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4월 말에 나와야 알겠지만, 과연 금융위기 국면이 끝났다고 자신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간섭을 피해보려는 움직임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 와중에도 실업률은 이미 8.5퍼센트를 돌파했고, 소매판매지수가 부진을 보이는 등 실물경제 악화는 계속되고 있다. 실업률 기준으로 본다면,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의 기본시나리오는 이미 넘어버렸고,
최악의 시나리오인 8.9퍼센트도 훌쩍 넘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표1] 미국 19개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파산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는 무작정 정부에 손을 벌리다가 사태가 조금 나아지자, 곧바로 과거처럼 정부의 규제를 벗어나 다시 사익을 추구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국내은행, 정부의 자본확충 요구 때문에 손해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최근 조금 다른 문제로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
다. 바로 지난해 말 정부가 은행들에게 자본확충을 요구해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발행했던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 채권) 부담에 대한 불만이다.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자, 국내 시중은행들도 자금조달처가 막히고 대출부실이 확대되면서 자본 건전성이 악화되는 등 위기의 징후를 보이게 된다.
그러자 당황한 정부는 2008년 11월 14일 서둘러 1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을 발표하면서 금융채 매입에 나섰고, 2008년 12월 3일에는 금융감독원이 은행별로 적정 자기자본율(12퍼센트) 달성을 위한 자본확충 필요액을 제시하면서,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BIS 비율을 12퍼센트까지 늘리라고 압박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2008년 12월 18일,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자본확충 펀드’ 20조 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2009년 2월 시행에 들어가 2009년 3월 말까지 1차로 4조 원 규모의 은행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매입했다. 

                                          [표2] 자본확충 펀드에 의한 은행별 매입액

그런데 정부가 자본확충펀드를 동원해 은행채를 매입하기 이전에, 주요 시중은행들은 채권시장을 통해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팔아서 자체적으로 자본을 조달해왔다. 이렇게 시중은행들이 조달한 자금이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후순위채권 약 9조 원, 신종자본증권 약 4조 원 규모에 달한다(금융감독원 국회정무위 업무보고 2009.4.13).

[표3]에서 볼 수 있듯이, 2008년 말 후순위채나 신종자본 증권 발행시 은행들은 7~9퍼센트를 넘나들 만큼 높은 금리를 물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 기준금리가 2퍼센트까지 떨어지고 금융위기가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대출 금리도 급격히 떨어지자 지난해 고금리로 조달한 것이 은행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표3] 주요 은행 자본확충 현황

현재 시중금리가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으로 고시금리는 3~5퍼센트, 실제 적용금리는 5퍼센트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7~8퍼센트에 자금을 조달해서 5퍼센트 수준으로 대출을 해야 할 판이니 예대 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역마진을 우려하는 상황이 과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은행들은 곧바로, 지난해 말 정부가 강압적으로 자본확충을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고금리로 후순위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지금 수익성 압박을 받게 되었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한 고위 인사가 “금융당국이 선제적인 자본확충을 강조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채 발행에 나선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 사례가 그것이다(<매일경제> 2009.4.14).

반년 전의 아찔한 위기를 잊어버린 은행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불과 3, 4개월 전 스스로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망각하고 하는 발언이다. 이미 2008년 10월부터 시중은행들은 환율폭등과 단기차입외화 만기 연장을 할 수 없어 줄줄이 신용등급 하향 경고가 이어졌고, 신용스프레드가 커져서 외화 조달금리는 급등했다. 그 때문에 정부가 시급히 외화 1,000억 달러 지급보증과 300억 달러 지원을 포함한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했다.

이어지는 실물경제 침체로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대출자산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산건전성도 위협을 받게된다. 이미 과잉된 CD와 은행채는 소화되지 않아 원화 자금조달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자본건전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2008년 연말까지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지 못해 은행 신용등급이 강등되었다면, 연쇄적으로 신용위험이 높아져 은행 신용부도스왑이 올라가고 차입을 위한 가산금리가 폭등하는 사태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다소 상황이 풀리니 이런 위급한 상황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시중은행들이 까맣게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급전직하로 하락하고 차입금 만기 연장은 50퍼센트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며, 실적 역시 적자로 반전되어 2008년 4분기 기준 18개 은행들이 대략 3,000억 원의 순손실을 보기까지 했던 것이 바로 몇 개월 전이었다. 고금리라도 감수하고 자본확충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BIS자기자본 비율이 2007년 말 12.3퍼센트에서 2008년 9월 말 10.9퍼센트로 떨어졌던 것이, 그렇게 자본확충을 했다고 해봐야 2008년 말 기준으로 1년 전 수준인 12.3퍼센트 되돌아온 것에 불과했다.

은행의 고금리 부담, 경영권을 지키려고 스스로 택한 길 아닌가?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왜 은행들이 자본확충 방법으로 주식을 늘리지 않고 부채라고 할 수 있는 채권을 늘렸는가 하는 점이다. 은행들이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 자본확충을 위해 발행했던 후순위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은 엄밀히 말하면 부채이지 자기자본이 아니다. 일반 은행채에 비해 상환부담이 적어 BIS에서 소위 보완자본(Tier 2)으로 인정해주는 것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에는 은행 건전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후순위채권이 포함된 BIS자기 자본비율이 아니라 순수하게 주식만을 자기자본으로 인정하는 ’기본 자기자본(Tier 1) 비율’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아예 의결권과 책임성이 없는 우선주도 빼고 보통주만을 가지고 자산건전성을 엄밀하게 평가하는 ‘보통주 자기자본비율(단순자기자본비율; TCE, Tangible Common Equity)’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은 의결권과 경영권 위협들을 회피하기 위해 굳이 후순위채 발행이나 신종자본증권 발행이라는 편법적인(?) 방식의 자본확충에 집착을 했고, 그 대가로 높은 금리 부담을 감수했을 뿐이다. 즉 시중은행들은 어떻게 하든 경영간섭을 피해보려고 정상적인 자본확충방법인 보통주 증자는 물론이고 우선주 발행도 하지 않고 오직 후순위채권 등의 발행에만 의존했다. 그 대가로 고금리 지불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우리 정부가 사실상 공적자금으로 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하면서도 언제나 경영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친절한(?) 단서조항까지 달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부실 위험에 빠진 씨티은행에 대해 미국정부가 우선주를 매입했던 것과는 대비된다(2009년 2월 27일, 미국 정부는 씨티은행에 투입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시키면서 사실상 국유화했다.) 결론적으로 고금리 후순위채 발행 부담은 은행이 선택한 것이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은행 민영화 재검토, 그러나 산업은행 민영화는 왜 계속?

더욱 황당한 것은 시중은행들이 정부가 후순위채 발행을 압박한 것을 두고 “자본확충이 시급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중소기업 대출을 무리해서 늘리라는 당국 주문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매일경제> 2009.4.14).

상식적으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은행 자본확충을 지원해 준다면 당연히 은행 자신만을 위해서일 수가 없다. 국민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이 기업과 가계의 대출여력을 확대할 목적이 있음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이 같은 주장을 한다면 심각한 글로벌 금융위기 한 복판에서도 오직 은행 자신만 살겠다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아니다.

그 어떤 금융회사보다 공적인 책무가 큰 은행들이 국민경제의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속한다면 사실상 어떤 지원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은행들에 대한 평가 지표를 오직 ‘수익성’으로만 측정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향후에는 적어도 은행에 대해서는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 이외에 ‘산업적 기여도’와 같은 공적 지표를 만들어 정부지원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 공적 은행들의 역할과 비중을 높여 사적 수익만을 추구하는 시중은행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것마저 검토되어야 한다.

최근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한 포럼에서 “기업은행은 (산업은행과 달리) 민영화 자체가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있다”면서 “그나마 기업은행이 있어서 금융위기 상황에서 이 정도라도 대응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고 주장했다(<한국경제> 2009.4.13).

최근 시중은행들의 행태에 비추어 바람직한 주장이다. 새사연은 이미 금융위기 초반기인 2008년 9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 대한 민영화 계획도 현재 상황에서 추진하기에는 무리다. 그나마 국내 시중은행이 대부분 민영화되고 외국인 지분이 다수인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국책은행마저 민영화하겠다는 것은 금융불안에 대비할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새사연,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와 MB정부의 경제정책 전환”, 2008.9.22)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진위원장은 동시에 “기업 금융에 노하우를 축적해온 산업은행은 그 모델을 갖고 민영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민영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산업은행 민영화 관련법안 통과 강행 의지가 엿보인다. 어째서 기업금융 노하우를 민영화하면 발휘할 수가 있고 국책은행으로 남아있으면 할 수 없단 말인가?

일시적으로 금융위기가 소강상태에 빠지자 미국은행들에 이어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다시금 규제와 감독을 피해 수익추구에 몰두하려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 실물경제 불황에서 그들은 아무런 교훈도 얻고 있지 못한 것이 확실한 걸까.

잠시 주식시장이 반등세를 보이자 그 동안 반 토막 난 펀드판매로 곤혹을 치뤄 다시 적금상품 판매로 돌아섰던 은행들이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펀드판매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펀드 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2007년 10월 말 기준으로 설정한 국내주식형펀드 694개의 유형 평균 수익률이 2009년 4월 13일 기준으로 -35.54퍼센트로 집계되었다. 해외주식형 펀드는 -52.45퍼센트로 여전히 반토막이다(<연합뉴스> 2009.4.14). 펀드판매 재개를 서두를 시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동향을 보건데, 수익추구 제일주의와 주주자본주의 틀에 갇혀있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스스로 구조전환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찍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용어 설명>

▶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흔히 자기자본(보통주 + 우선주 + 신종자본증권 + 후순위채권)/ 위험가중자산 * 100로 계산된다. 경제가 위기에 돌입해서 부실대출이 늘어나거나 보유증인 유가증권 손실위험이 커지면 위험가중 자산이 늘어나서 비율이 떨어지게 된다. 2008년 말 정부는 은행들에게 자기자본 비율을 12퍼센트 이상으로 유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BIS 자기자본비율은, 후순위채권과 같이 상환부담이 덜할 뿐이지 내용상 부채인 것까지도 자기자본으로 간주한다는 약점이 있어 주식만으로 건전성을 평가하는 기본자기자본비율을 잣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2008년 말 정부가 요구한 기본자기자본비율은 9퍼센트였다. 최근에는 아예 모든 부채성 자산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보통주만을 가지고 건전성을 평가하는 보통주자기자본비율(단순자기자본비율)로 평가하는 추세다.

▶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권, hybrid bond)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모두 가진 증권(채권)으로, 하이브리드채의 매입자는 일반 채권에 투자한 것처럼 확정금리를 지급받으면서도 주식에 투자한 것처럼 원리금을 후순위로 지급받고 이자를 비누적적으로 받는다. 후순위채권이 보통 5년 만기인데 비해 신종자본증권은 30년 만기가 일반적이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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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쇼장에서 쫓겨난 자동차 비정규직

경찰, 서울모터쇼 앞 회견열던 금속 비정규직 40여명 연행

정문교 기자  / 2009년04월03일 12시08분

▲  서울모터쇼 행사장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자회견

자동차를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모터쇼 개막식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다가 대부분 연행됐다.

3일 오전 11시10분께 경기 고양시 킨텍스(KINTEX)에서 열린 ‘2009 서울모터쇼’ 개막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금속노조 비정규투쟁본부(본부장 김형우) 소속 조합원 40여명이 회견 마지막 순서로 퍼포먼스를 마친 직후 경찰에 대부분 연행됐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GM대우와 동희오토(기아 모닝 생산),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소속 비정규직 등 노동자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노동착취로 쌓아올린 ‘서울모터쇼’의 허상을 알리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아자동차 '모닝'에 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회견 끝 무렵 준비해온 모닝 1대에 선지(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한국의 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로 만들어진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경찰은 퍼포먼스 직후 회견을 마치고 ‘가겠다’는 노동자들을 둘러싼채 연행을 시작했다. 경찰은 11시10분께 1차 연행에서 경찰 현장 지휘자의 “모두 연행해”라는 지시와 함께 전격 연행에 들어가 40여명을 연행했다. 경찰은 연행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집시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권순만 금속노조 부위원장과 김형우 비정규투쟁본부장도 함께 연행됐다.

▲  기자회견을 마치자마자 경찰의 연행이 시작됐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지를 들려 연행되고 있다.

▲  연행되고 있는 권순만 금속노조 부위원장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실신해 일산 백병원으로 후송됐다. 11시30분 현재 경찰은 연행을 피해 남은 여성 조합원 5명도 둘러싼채 이동을 막고 있다. 경찰은 동원한 여경 숫자가 부족해 일부 여성 조합원들을 연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연행 과정에서 실신한 여성 노동자는 일산 백병원으로 옮겨졌다.

▲  연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편 한승수 총리는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뒤 현대차 전시관을 비롯 도요타 아우디 등 전시관을 찾아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 윤여철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 등도 이날 개막식에 참가했다.

‘아름다운 기술, 놀라운 디자인’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모터쇼엔 9개국 158개 업체(국내 124개 업체, 해외 34개 업체)가 참가했다. 신차 23대, 컨셉트카 14대, 친환경자동차 31대, 쿠페/스포츠카 13대 등 총 149대의 자동차가 전시됐다. 모터쇼에는 기아차의 준대형 SUV 쏘렌토R과 GM대우의 차세대 마티즈 등 경찰에 연행된 노동자들이 생산하거나 생산할 자동차들도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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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1980년대 이후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의 중심 지역으로 떠올랐고, 여기에는 ‘부동산’이 지렛대가 되었다. 약 51만 명이 사는 ‘강남마을’을 숫자 100으로 들여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숫자 100으로 본 서울 구석구석> 강남구 편을 공부해본다.





강남 인구가 100명이라면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사람은 51만 명에 달한다(이하 2005년 기준). 강남 인구를 100명으로 친다면 남자 대 여자의 수는 48 대 52로 여성이 더 많다. 외국인 비중은 0.4%를 차지하고 있다.

22명은 어린이와 청소년이고(19살 이하), 78명은 어른이다. 어른 가운데 6명은 노인(65세 이상)이다.



역삼동에 7명이 살고, 논현1,2동․대치2동․도곡2동․개포1동에는 5명씩, 신사동․청담1동․삼성2동․대치1동․대치4동․역삼2동․도곡1동․개포2,4동․일원본동과 1,2동․수서동에는 4명씩, 압구정1동․삼성1동․대치3동․개포3동에는 3명씩, 압구정2동․청담2동에는 2명씩 살며, 세곡동에는 1명이 산다.


61명이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는 데 9명은 대학에 재학 중이고 51명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졸업자 중 11명은 석사 과정 이상의 공부를 하였다(6살 이상 기준).

23명은 개신교, 21명은 천주교, 15명은 불교를 믿는다. 그러나 38명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40명은 미혼이며, 60명은 결혼했다. 결혼한 사람 가운데 5명은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사망했고 2명은 이혼했다(15살 이상 기준).



3명은 몸이 불편하거나 정신 장애로 정상적인 활동에 제약을 느끼고 있다.


36명은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산 지 5년이 넘었으나 64명은 5년 이내에 새로 이사왔다(5살 이상 기준). 이사 온 사람 중 38명은 강남구 안의 다른 동(洞)에서, 11명은 서울 안의 다른 구(區)에서, 14명은 서울 바깥에서 이사 왔다.




강남 사는 직장인이 100명이라면



강남구에 사는 15세 이상 인구 43만 명 가운데 취업해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21만 명이다. 강남구 취업자가 100명이라면 55명은 30∼40대, 23명은 20대이며, 50대는 16명이다. 65세 이상 노인도 2명이 일하고 있다.



70명은 회사에서 봉급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다. 13명은 고용한 사람 없이 혼자서 일하는 자영업자이며, 15명은 누군가를 고용해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업주다. 2명은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보수 없이 일하고 있다.



직업은 전문가가 24명, 사무직이 22명, 기술직이나 준전문가 12명, 서비스직 11명, 판매직 10명이다. 또 9명은 고위 관리직, 4명은 단순노무직, 또 다른 4명은 기능직, 2명은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직으로 일하고 있다.



48명은 직장으로 출근하는 데 30분 이상 걸리며 그 가운데 19명은 1시간 이상 걸린다. 21명은 걸어서 출근하고 79명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근한다. 79명 가운데 38명은 승용차 또는 승합차로, 16명은 전철로, 15명은 시내버스로 출근한다. 5명은 전철과 버스 또는 승용차를 갈아타며 출근한다.



91명은 사무실이나 공장 등에서 일하는 반면 4명은 야외나 거리 또는 운송수단에서 일한다. 2명은 남의 집에서, 또 다른 2명은 자기 집에서 일한다.




강남에 100가구가 산다면



강남에 사는 가구(따로 표시하지 않을 경우 일반가구를 말한다)는 19만 가구다. 강남에 사는 가구를 100가구로 친다면 47가구는 식구가 한 명 또는 두 명인 1,2인 가구이며, 이 가운데 27가구는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다. 식구 4명은 26가구, 3명은 20가구, 5명은 6가구다.



37가구는 자신이 소유한 집에서 살고, 61가구는 셋방에 살며, 2가구는 직장의 사택이나 친척집 등에서 무상으로 살고 있다. 자기 집에 사는 가구 중 8가구는 현재 살고 있는 집 외에 최소 한 채에서 여러 채를 소유한 집부자들이다.



셋방사는 가구 가운데 33가구는 전세에, 25가구는 보증금 있는 월세에, 2가구는 보증금 없는 월세에 살고 있다. 셋방 사는 가구 중 11가구는 어딘 가에 자신 명의의 집을 소유하고 있으나 경제사정이나 자녀교육 직장 등의 사정으로 셋방에 살고 있다.


67가구는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지 5년이 안되며, 이 가운데 42가구는 2년이 안 된다. 15가구는 5∼10년이 됐고, 18가구는 10년이 넘었다.



64가구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63가구는 자기 집에 전용주차장이 있다. 자동차 소유가구 중 15가구는 차를 2대 이상 소유하고 있다.






강남에서 셋방 사는 사람




강남 26개 동 가운데 셋방 보다 자기집에 사는 사람이 많은 동네는 9곳이며 나머지 17개 동은 모두 셋방사는 사람이 더 많다. 대치1‧2동, 압구정1‧2동, 도곡2동, 청담1동, 일원본동은 60%이상이 자기집에 살고 셋방사는 가구는 30%대에 머문다. 그러나 논현1동, 대치4동, 역삼1동, 일원1동은 자기집 거주 가구가 10∼20%에 불과하고, 80% 이상이 셋방에 산다.




그런데 자기집에 사는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집을 두 채이상 여러 채 소유한 다주택자도 많다. 자기집에 비율이 가장 높은 대치1동(64%)과 대치2동(62%), 도곡2동(62%)은 거주 가구의 15%∼17%가 집을 여러 채 소유한 다주택자들이다. 압구정1동과 2동, 청동1동, 삼성1동, 대치3동, 도곡1동, 일원본동도 거주가구의 10% 이상이 다주택자로 강남구 26개 동네 가운데 9개 동네가 동네 사람의 열중 한 명 이상이 현재 살고 있는 집 외에 어딘가에 최소 한 채 이상을 더 소유한 집부자들이다.



한편 대치1동과 2동에서 셋방 사는 사람 넷 중 하나는 어딘가에 자기 명의의 집이 있지만 강남에서 셋방을 얻어 살고 있다. 26개 동네 가운데 15개 동네가 셋방사는 가구 중 어딘가 집을 소유한 가구 비중이 10%가 넘고 있다.



반면 역삼1동(77%), 논현1동(75%), 대치4동(74%), 일원1동(73%), 수서동(72%)은 동네 사람 열 중 일곱 이상이 집없이 셋방사는 사람들이다. 집없는 셋방 가구가 절반이 넘는 곳은 모두 12곳이다.






강남에 있는 집이 100채라면




강남에는 집(주택과 주택 이외의 거처)이 14만 채가 있다. 강남에 있는 집이 100채라면 4분의 3 가까운 72채는 아파트다. 다세대 주택은 11채, 단독주택은 7채, 연립주택은 3채다. 오피스텔과 비닐집․판잣집․움막 등 주택이외의 거처가 5채, 상가 등에 있는 주택이 1채다.



강남 100가구 가운데 54가구는 아파트에, 29가구는 단독주택에, 11가구는 연립다세대주택에, 3가구는 오피스텔에, 2가구는 비거주용건물내주택에, 1가구는 비닐집․판잣집․움막에 산다. 10년 사이에 단독주택이 줄고 아파트는 늘어 4분의 3에 육박하지만, 단독주택에 사는 가구는 21가구에서 29가구로 늘었다.



32채는 지은 지 10년(1995∼2005)이 안 된 새 집이며, 37채는 지은 지 20년이 넘은 낡은 집으로 곧 재개발‧재건축될 수 있는 집이다.



지난 10년 동안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은 20%와 44%가 줄어든 반면,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은 10%와 227%가 늘었다. 29평 이상 큰 집이 4채 늘 동안 14∼19평은 한 채 느는 데 그쳤으며, 14평 미만의 작은 집은 오히려 1채가 줄었다. 현재 29평 이상은 37채, 19∼29평은 27채인 반면, 14∼19평은 16채, 14평 미만은 19채다.




강남에서 지하방과 비닐집에 사는 사람



강남에 사는 100가구 중 7가구는 식구에 비해 집이 너무 좁거나 방수가 너무 적은 집에 사는 등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기 어려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다.



강남에 사는 100가구 가운데 93가구는 지상에 살지만, 7가구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 세곡동에 사는 가구의 35%가 지하방에 사는 것을 비롯해 일원1동 19%, 논현 1동 13% 청담2동 12%, 대치4동‧역삼1동‧개포4동 각 10% 등 지하방 거주가구 비중이 10% 이상인 곳은 26개 동 중 7곳이다. 지하방 가구수는 역삼1동, 논현1동, 일원1동 순으로 많다. 세곡동은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과 함께 전국에서 지하방 거주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다.




한편 세곡동과 개포1,2동은 각각 거주가구의 20%와 15%, 9%가 비닐집·판잣집·움막에 산다. 개포1,2동은 전국에서 비닐집·판잣집·움막 거주 가구수가 가장 많은 동네다.



거실이나 부엌을 각각 1개의 방으로 쳐서 방 3개 이하에서 셋방살이를 떠도는 사람은 50가구에 달하지만, 이들에게 꼭 필요한 공공임대주택은 6채밖에 안 된다. 따라서 서울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서 현재의 8배에 달하는 공공임대주택을 성실하게 공급해야 한다.






숫자 100으로 본 강남은?




강남에 사는 사람은 서울에 사는 평균인에 비해 고학력이며 사업주이거나 전문직과 준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고, 자가용을 두 대 이상 가진 사람도 훨씬 많다. 주택 중 아파트 비중은 월등히 높고, 20년 넘은 주택도 많은 편이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한 다주택자가 가장 많지만 셋방사는 가구 비중도 서울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으며, 어딘가 자기 명의의 집이 있지만 강남에서 셋방사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다는 특징이 있다.



강남 안에는 크고 값비싼 아파트도 많지만 (반)지하나 비닐집에 사는 극빈층도 상당수에 이른다. 나홀로 사는 가구 비중도 서울시 평균 보다 높고, 강남 사람 절반이 소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받아야 할 대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집값과 전월세값이 비싼 탓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주거현실을 감내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읽힌다.




<숫자 100으로 본 서울 구석구석>, 오늘은 강남구를 들여다봤다.

출처 '손낙구의 세상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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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따위야?! 일단 위험물질 '풍선'의 반입을 금하라! ▲풍선을 들고 여의도 문화마당을 가는 시민을 가로막는 경찰 풍선을 날리면 현행법 위반? 반북단체들이 2월 16일을 전후하여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대북비방전단(삐라)를 뿌리겠다고 공언한 후 한국진보연대는 "군사적 긴장마저 불러올 수 있는 삐라살포를 이명박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반북단체가 대북전단살포를 살포하는 것을 이명박정부가 책임지고 중단시킬 것과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남북화해협력 기조를 복원하고 이행하여 남북관계정상화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반북단체의 경거망동한 행위를 수수방관하고 남북관계 경색을 그럴수도 있다는 관망적인 자세를 보이며 남북관계경색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 연평도 근처는 고깃배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장되어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는 북의 미사일만을 언론에 언급하며 군사적긴장을 호도하기에만 급급하고 실제로 해결할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군사분계선은 되고 여의도 문화마당은 안된다? 이에 한국진보연대는 "삐라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격화시키는 총알과 같다"고 주장하며 2월 15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전단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시경 여의도 문화마당은 영등포 경찰서 소속 전경에 위해 완전히 봉쇄되었으며 한개의 풍선도 들어갈수 없었다. 풍선을 든 사람은 경찰이 가로막았고 가로막는 이유가 무엇이내고 묻자, 도심에서는 풍선을 날리는 것이 금지되어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군사분계선일대에서 대형풍선을 날리는 것은 불법이 아닌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 여의도 문화마당 입구, 경찰은 풍선 한개도 공원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풍선이 폭탄인가? 경찰병력은 여의도 문화마당 입구에서 풍선을 들고 있던 사람과 대치하며 "밀어버려"라고 외친후 알록달록 색색이 풍선을 손으로 터뜨리기 시작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의 반북단체 삐라살포는 비호하고 알록달록풍선은 마치 폭탄인냥 터뜨려버리는 경찰의 만행에서 이명박정부의 진면목을 보는 듯 했다. 한국진보연대와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영등포 대영빌딩 앞으로 자리를 옮겨 대북적대정책폐기를 요구하는 전단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 하늘로 올라가는 대북적대정책 철회 평화바램 애드벌룬 국민은 불안하다 군사적 긴장까지 치닺고 있는 남북관계 경색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색 고운 풍선에는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터뜨리는 이명박정부의 행태에 웃음보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심지어 정부과 한나라당은 대북삐라살포를 지원하는 소위 '북인권법'의 상정을 예정하고 있다. '국민 불신임 저축' 만기의 끝은? 실제로 교전사태가 벌어지면 그 책임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교전사태가 하루만 지나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사회적 긴장사태가 조성될 것이다. 해결방안이 있는 대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가 다만 북이 공격했다며 여론호도를 통해 호전적 망동을 하지 않을 지 염려된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어느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명박정부는 집권초기부터 '불신임저축'을 꾸준히 하고 있다. 국민은 이미 불안하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전쟁으로 귀결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대북적대정책을 중단하지 않고 남북관계가 극단의 상황으로 귀결될 경우 이명박정부는 '국민의 불신임 저축'의 만기를 빨리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군사긴장 불러오는 대북적대정책 중단하라! 이명박정부는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라! 반북삐라살포 저지하라! 삐라지원법, 북인권법안상정을 폐기하라!

출처 : 한국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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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수배자 한국진보연대 오종렬·주제준 경찰에 체포

농민회 간부들과 간담회 마치고 이동중 연행

차성은 기자 / mrcha32@vop.co.kr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공동대표(좌), 주제준 사무처장(우)
  •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공동대표(좌), 주제준 사무처장(우)
광우병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온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와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사무처장이 13일 오후 경찰에 체포됐다.

오종렬 대표와 주제준 사무처장은 이날 오후 3시40분께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무실에서 나오던 중 밖에서 잠복하고 있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10여명에게 체포됐다.

오 대표와 주 사무처장은 이날 낮 12시께 전농 사무실에서 전농 간부들과 촛불집회 탄압 및 한미FTA저지에 대해 간담회를 진행한 후 모처로 이동하려다 체포됐으며, 체포 직후 종로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집행부 등과 공모해 지난 5월3일부터 7월 초순까지 서울 태평로·세종로 등 시내 주요 도로를 점거한 채 경찰버스를 손괴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총 30여회에 걸쳐 '미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연행된 두 사람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오 대표와 주제준 처장은 지난 8월 초부터 소환장이 나왔으며, 8.15 대회 후 자진 출두하겠다는 입장을 내용증명 형식으로 경찰에 전달했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생활을 해왔다.

오종렬 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11일 서면 호소문을 통해 오는 15일 '경제파탄 국정실패 이명박 정권 심판, 내각 총사퇴 촉구대회'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한 바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내일(14일) 오전 11시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출처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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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그림 만평

2008/09/26 15:06 | Posted by wire

출처 : 한국진보연대

보증금 2000만원이 없어서 집도 못 구하고 있는데 누구는 2000만원 세금 혜택을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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