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사회를 반영한다. 제 아무리 허무맹랑한 SF공상과학 영화라 할지라도 사회의 코드를 반영하지 않는 이상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며 공감을 얻지 못한다. 코미디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면 관객을 흡입하지 못하며 웃음을 줄수 없다.
미국의 월가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번진 'Occupy 운동'. 1%에 맞선 99%의 저항이 미국의 현실이다. '타워 하이스트(Tower Heist)'는 그런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상류층만이 사는 최고급 아파트 타워(The Tower).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든 입주자의 취향과 사생활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맞춤형 서비스를 해줄수 있으니까. 최고급 아파트의 마천루인 펜트하우스에는 투자의 귀재인 '쇼'가 살고 있다. 그의 집 안에는 페라리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으며, 수영장 바닥에는 100달러 지폐가 그려져 있다.
그에 반해 타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일반 서민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자동차가 있어도 돈을 아끼기 위해 전철이나 버스로 출퇴근을 한다. 힘들어도 악착같이 회사에 남아있어야만 한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노후를 위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그러던 중 투자의 귀재인 '쇼'가 사기혐의로 FBI에 체포되고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타워의 관리소장인 조시(벤 스틸러)는 몇 년 전 직원들의 연금을 '쇼'에게 3배로 불려준다는 말을 믿고 맡겨왔었다. 직원들과 상의도 없이, 어느 누구도 돈을 불려달라고 한적도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쇼'의 통장에는 600달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돈 떼이게 생겼다. 분명 어딘가에 돈을 숨겼을거라 확신하는 조시는 옆집에 사는 좀도둑인 슬라이드(에디 머피)를 섭외하여 돈을 훔치기로 한다.
여태까지 보아왔던 미국식 코미디와 별반 다를게 없지만 타워 하이스트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기에 충분하다. 에디 머피와 벤 스틸러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코미디의 강도가 생각보다 약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조연들의 감초같은 코믹 연기는 재미있다.
타워 하이스트는 미국의 현실을 잘 반영한 코미디 영화다. 1%의 편의를 위해 살아온 99%,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것은 1%다. 미국은 금융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이고, 뉴욕은 그 중심에 있다. 미국에서 소위 투자자라 포장되어 있는 투기꾼들은 사회의 최상류층을 형성하여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다. 하지만 그런 투기꾼들은 '쇼'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온갖 품위를 떨어보지만 속으로는 돈에 눈 먼 속물일 뿐이다. 개미들의 투자금이란 그들의 사치스런 생활을 위한 생활비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사법부가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는 것도 아니다. 법의 허점과 막강한 인맥을 동원하여 빠져나가기 일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현실이니 사람들은 로빈훗이 나타나길 원한다. 현실에서는 로빈훗의 등장이 어려우니 다른 방법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기업의 초과이윤에 세금을 매기는 '로빈훗세' 도입이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로빈훗이 되기로 한다.
로빈훗이 되어 난공불락과도 같은 펜트하우스를 점령하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시위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것은 허무맹랑한 상상력도, 억지스런 코미디의 상황이 아니라 미국의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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